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국토정책은 ‘수도권 과밀과 지역 소멸’이라는 이중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균형발전정책을 시도해왔다. ‘혁신도시 건설’, ‘공공기관 이전’, ‘지방대 육성’,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 등은 국가적 프로젝트로 추진되었고, 특히 노무현 정부 이후 본격화된 지역균형발전 기조는 이후 모든 정부에서 핵심 국정과제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날, 정책의 지속성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중은 여전히 강화되고 있고, 지역 간 격차는 구조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을 지난 20년간의 흐름 속에서 진단하고, 그 한계와 향후 과제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지역균형발전정책의 역사적 경로
1) 2003~2007: 제1기 지역균형발전 –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노무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고, 10여 개 부처 산하의 공공기관 153개를 전국 10개 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이는 수도권의 기능을 전국으로 분산시킨 대표적 정책이었으며, 지역에 대한 국가적 투자로 평가된다.
2) 2008~2016: 경제 논리 중심의 지역개발로 회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지역균형발전 기조가 약화되고, 지역은 광역경제권, 지역거점 육성 중심의 전략으로 재편되었다. 지역은 투자 대상이라기보다 효율적 개발 대상으로 간주되었으며, 수도권 규제완화 역시 동반되었다.
3) 2017~2022: 생활 SOC와 지방소멸 대응으로 방향 전환
문재인 정부는 ‘포용국가’를 기조로 생활 SOC 투자와 지역 일자리 창출에 집중했으며, 지방대 육성과 지방소멸 대응이 주요 과제로 부상했다. 또한 2단계 공공기관 이전 및 지역혁신 플랫폼 시범사업도 병행되었다.
4) 2022~현재: 지역주도 균형발전과 초광역 전략
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를 선언하며 중앙주도에서 지역주도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했다. ‘초광역권 발전 전략’(메가시티 구상)이 주요 정책 프레임이 되었고,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자율과 경쟁을 기반으로 한 정책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2. 주요 성과와 한계
성과
- 전국 단위의 인프라 확대와 정주 여건 개선: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도로, 철도, 학교, 병원 등 인프라 확충이 이루어짐.
- 일부 지역의 성장 거점화: 세종시, 대구·경북, 전북 등 일부 혁신도시는 산업·교육·행정의 중심지로 일정 부분 성장.
- 지역정책의 제도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발전계획, 균형발전특별회계 등은 법과 제도를 통해 안정화됨.
한계
- 수도권 집중의 지속: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03년 47.6%에서 2023년 50.4%로 상승. 수도권으로의 일자리, 교육, 의료 집중은 여전함.
- ‘혁신도시의 섬’ 문제: 공공기관 이전은 성공했으나, 지역 산업 생태계와의 연계가 약해 지역 내 파급효과는 미미.
- 지방대 위기의 심화: 지방대학의 구조조정과 학생 수 감소로 인해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은 가속화됨.
- 행정의 분절성과 비효율: 각 부처와 지자체 간 연계 부족으로 인해 통합적 지역전략 수립이 어려움.
3. 향후 과제와 정책적 제언
1) 정책의 스케일 조정: ‘도시’ 단위에서 ‘생활권-지역권’ 단위로
거시적 균형보다는 미시적 회복력이 요구된다. 지역 내 삶의 질을 높이는 생활권 단위의 정책, 그리고 지역 간 기능적 연계를 강화하는 중간 규모 권역 정책이 필요하다.
2) ‘하향식 이전’에서 ‘상향식 연계’로의 전환
공공기관 이전처럼 중앙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투사하는 방식이 아닌, 지역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상향식 모델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지역대학, 지자체, 기업 간의 협력을 통한 내발적 혁신 역량 강화가 핵심이다.
3) 디지털-녹색 기반의 차세대 산업 생태계 조성
지방의 산업구조 고도화는 여전히 미진하다. 탄소중립, AI, 바이오 등 미래 산업의 지역 기반 조성이 병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규제완화와 인재 순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4) ‘정주 가능성’에 주목하는 인구전략 전환
인구 유입을 통한 ‘성장’보다는, 기존 주민이 지속적으로 거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주 가능성’ 중심의 전략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맺으며
지난 20년간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은 한국이 중앙집중 국가에서 다핵분산형 국가로 전환하고자 한 실험의 역사였다. 성과와 한계를 균형적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이제는 보다 정교하고 입체적인 전략이 요구된다. 지역은 더 이상 ‘균형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의 공간’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중앙과 지역의 관계, 경제와 공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재구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