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 곧 진보인가? 활성화가 늘 모두에게 유익한가?”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단어들이 누구의 입장에서, 어떤 의도를 은폐하고 있는지 성찰할 때다.
1. 들어가며: 익숙한 언어의 낯설게 보기
우리 도시와 지역은 늘 ‘개발’과 ‘활성화’라는 단어 아래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신문 기사, 행정 문서, 도시 계획안, 정책 보고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 단어들은 마치 선한 목적의 동의어처럼 통용된다. 개발은 ‘좋은 것’, 활성화는 ‘필요한 것’으로.
그러나 우리는 물어야 한다. “무엇을, 누구를 위한 개발과 활성화인가?”
이 글은 도시 공간에서 자주 쓰이는 이 두 개념의 언어적 사용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바탕으로, 그 함의와 권력 관계, 그리고 실천적 대안을 모색한다.
2. 개발이라는 언어: 진보의 탈을 쓴 배제
‘개발’이라는 단어의 정치성
‘개발’(development)은 표면적으로는 ‘낙후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변화’로 이해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권력의 작동 방식에 따라 어떤 공간은 선택되고, 어떤 존재는 배제된다. 예를 들어, ‘재개발’이란 말은 낡은 도시를 바꾸는 긍정적 변화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원주민의 퇴거, 기억의 삭제, 사회적 약자의 쫓겨남이 숨어 있다.
개발 담론의 효과
- 경제적 언어의 우위: 개발은 주로 ‘경제 성장’, ‘투자 유치’, ‘부가가치 창출’ 등의 수사로 정당화된다.
- 정서적 동원: ‘우리 동네가 살기 좋아진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등의 구호는 감성적으로 시민을 포섭한다.
- 비판의 불가능성: 개발 반대는 곧 ‘발전 반대’, ‘시민 혜택 거부’로 간주되기 쉬워, 비판 자체가 설 자리를 잃는다.
3. 활성화라는 수사: 무엇을 어떻게 살리는가?
‘활성화’가 항상 필요한가?
‘활성화’는 일견 더 중립적으로 들리지만, 실상은 ‘정체되어 있고 비효율적인 어떤 것을 시장 친화적으로 바꾸겠다’는 일방적 선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전통시장 활성화, 지역 문화 활성화, 골목길 활성화…
이 표현들 속에는 시장 논리의 개입, 자생적 리듬의 해체, 속도의 강요가 동반된다.
살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의 혼동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자주 벌어지는 일들:
- 장소의 상업화: 기존 커뮤니티가 누려온 공간이 ‘볼거리’로 전환되어 외부 소비자에게 맞춰진다.
- 정체성의 희석: 고유한 지역성보다 ‘포토존’, ‘카페거리’, ‘축제’ 등으로 표준화된 콘텐츠가 들어선다.
- 일시적 붐과 장기적 피로: 활성화는 지속 불가능한 이벤트나 시설물에 의존해, 잠깐의 효과 이후 ‘방치’로 귀결되곤 한다.
4. 언어를 따라가면 권력이 보인다
누가 말하고, 누가 침묵하는가?
‘개발’과 ‘활성화’는 계획자, 행정가, 정치인, 기업인의 언어다. 반면, 그 대상이 되는 지역 주민, 장사하는 사람, 노인, 청소년의 언어는 종종 들리지 않거나 무시된다.
“지역을 살리겠다”는 말에는, 정작 그 지역의 일상적 삶을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
언어의 주체를 되찾는 방법
- 공간 계획에서 당사자성을 보장하는 구조 필요
- 행정 보고서나 정책 문서에 시민 언어의 서술 구조 삽입
- ‘개발’이 아닌 ‘공존’, ‘순환’, ‘돌봄’ 등의 개념어를 사용한 새로운 설계 언어 실험
5. 다시 쓰기: ‘다른 가능성’의 언어 찾기
우리는 더 이상 ‘개발’과 ‘활성화’라는 말이 지닌 선의의 탈을 벗기지 않고는, 지역 공간의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대체어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 맥락,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 제안하는 실천 언어들:
기존 언어 | 비판적 성찰 | 대안적 개념 |
---|---|---|
개발 | 배제와 수탈의 정당화 가능성 | 전환, 회복, 공진화 |
활성화 | 상업적 효율성과 속도의 강요 | 돌봄, 자율성, 느림의 리듬 |
6. 맺으며: 말의 힘을 되찾는 도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개발’, ‘활성화’라는 언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세계관과 가치관을 조직하는 도구다. 이제는 이 단어들이 내포한 힘의 흐름을 읽어내고, 그것이 어떤 공간을 만들고 누구를 배제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말을 바꾸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공간이 바뀐다.
이제, 익숙한 단어를 의심하고, 새로운 언어로 우리의 도시와 마을을 다시 써보자.